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 88세 죽음 앞에서 남긴 단 한 단어 — '변방'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변방의 지혜

Pexels / Suzy Hazelwood

한국 1세대 문화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1년을 기자 김지수가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병상에서 그가 반복해 꺼낸 한 단어가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 — 원래는 유대인 이산(離散)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어령에게는 다른 뜻이 있었다.

'변방'에 서 본 자만 보는 것

이어령이 말하는 디아스포라는 "중심에서 밀려난 자의 시선"이다. 원래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보는 풍경.

그는 한국을 이렇게 해석했다. 중국 주변, 일본에 밀려난 땅, 미국 동맹 끝자락. 늘 "중심의 변방"이었다. 이 변방성이 결핍이 아니라 한국의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K-POP, K-드라마, K-문학.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심을 관찰했고, 중심을 관찰했기 때문에 중심을 재해석할 수 있었다. 중심에 서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변방에 서 본 자만 중심의 실체를 본다.

개인에게 주는 의미

이 개념은 국가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어령은 개인에게 이렇게 권했다.

"자기 분야의 변방에 한번 서 보라. 주류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자기를 보라. 그때 자기 분야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주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른다. 주류의 언어로만 말하고, 주류의 기준으로만 판단한다. 그래서 창조가 안 나온다. 창조는 변방에서 중심을 낯설게 보는 각도에서만 나온다.

죽음 앞에서의 '없음'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이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없음'의 철학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보는 것은 '있던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다. 지위·재산·명예. 전부 일시적 소유였다는 걸 깨닫는다. 남는 건 관계와 기억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죽어 보니 알겠더라. 내가 쌓은 건 전부 빌린 것이고, 내가 한 일 중 가치 있던 건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한 일이었다는 걸."

디아스포라 3가지 일상 적용

  1. 자기 분야 바깥의 책을 읽는다 — 개발자라면 시집, 마케터라면 철학, 학생이라면 생태학
  2. 자기보다 10살 어린/많은 사람과 대화한다 — 세대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내 세대를 다시 본다
  3. 익숙한 길을 다른 시간에 걷는다 — 출근길을 주말에, 단골집을 다른 요일에. 같은 곳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남긴 한 줄

이어령이 병상에서 기자에게 자주 반복했다는 한 문장.

"나는 중심에 서려고 평생 노력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전부 변방에 있었다."

중심에 서려는 노력은 누구나 한다. 이어령이 평생 공부해서 내린 결론은, 변방에 스스로 서 보는 연습이 인생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90년 지성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Life is Beautiful

  Life is Beautiful 삶은 아름답고 저는 행복해요 정확하겐 모르지만 가족도 잘 지내고 저도 잘 지내고 친구들도 잘 지내요 좋은 사람들 만나고,  여행 다니고, 공부하고, 졸업하고, 일하고 있고, 모든 게 좋아요! 맞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지내는 것 만으로도 인생은 참 아름다운데 생각 보다 그 외의 것들에 신경쓰느라 가장 소중한 걸 돌보지 못한 건 아닌지 지금도 나는 정말 행복하다. 같은 앤디라 더 친밀감이 느껴졌나 ㅎㅎ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부자들에게는 과소비가 없다 - 성공스낵

부자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암초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과소비하는 생활 태도이다. 흔히 과소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부유층의 과소비, 중산층의 모방소비, 하류층의 자포자기식 실망소비가 그것이다. 하지만 과소비가 능력이상의 소비를 의미하는 이상, 부유층의 과소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소비는 부자들이 하는게 아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졸부들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분수 이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과소비이다. 나는 한 번도 부자들이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여 카드빚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없다. 능력에 따라 소비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능력에 맞지 않게 소비하였지만 과소비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에 먹고 입는 것에서 거의 거지 수준으로 살면서 엄청나게 절약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나는 과소비를 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멋지게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술 담배를 모두 끊고 그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에 몰두 하거나 이웃 사랑에 사용하는 사람 역시 삶을 지혜롭게 살줄 아는사람 아니겠는가? 내가 과소비라고 단정하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입고, 걸치고, 마시고, 먹고, 놀고, 타는 데 있어서 갖가지 그럴듯 한 핑계를 대며 이루어지는 중산층의 모방소비와 하류층의 실망소비이다. 능력도 없는데 부자들의 소비를 흉내낸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소비가 부자들을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소비하는 것들의 대다수가 실은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업체들에서 나오는 것 들이기 때문이다. 차재호 서울대 사회심리학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과소비 성향은 권력욕구에서 나온다 고 하면서, 분수에 맞지 않게 과소비를 하는 것은 자신이 힘을 가졌다는 짜릿한 맛을 즐기기 위함이고 희귀한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은 권력욕구의 본질이 남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데 있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많은 수의 신용카드를 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