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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넘치는데 왜 더 혼란스러운가 —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21세기 지혜

정보가 넘치는데 왜 더 혼란스러운가 —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21세기 지혜

Pexels / Kaboompics

『사피엔스』로 전 세계 베스트셀러를 낸 유발 하라리가 후속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던지는 한 문장.

"정보 과잉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걸러낼 능력이다."

왜 정보가 많을수록 헷갈리는가

20년 전엔 정보가 귀했다. 신문·방송·책·대학이 주요 경로. 정보 한 조각이 힘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트위터·유튜브·뉴스피드·카톡방. 매일 수만 건의 정보가 쏟아진다. 문제는 정보 중 상당수가 서로 모순된다는 점. 어느 것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정보가 많을수록 혼란이 커진다.

하라리는 이걸 "정보 비만(information obesity)"이라 표현했다. 먹을 게 부족할 땐 칼로리가 힘이었지만, 먹을 게 넘치는 시대엔 안 먹는 능력·가려먹는 능력이 건강을 만든다. 정보도 똑같다.

지혜의 정의 — 하라리 버전

이 책에서 하라리가 제시하는 지혜의 정의는 이렇다.

"지혜는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아는 것이다."

뉴스의 90%는 3개월 뒤엔 잊힌다. 트렌드의 80%는 1년 뒤엔 사라진다. 하지만 매일 우리는 그 90%·80%에 시간과 주의를 쓴다. 진짜 내 삶에 영향을 줄 10%를 알아보는 훈련이 지혜다.

하라리가 매일 하는 것 — 명상

하라리는 20년 넘게 비파사나 명상을 해왔다. 하루 2시간, 매년 1~2개월은 완전 무언 명상 리트리트. 역사학자가 명상가라니 의아하지만 그 이유가 이 책에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보려면, 내 마음 자체를 관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알고리즘·광고·SNS가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끌어간다.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기 주의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아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게 명상의 핵심이다.

정보 다이어트 3가지

하라리의 원칙을 일상에 적용하면 이렇다.

  1. 뉴스 소비 시간 정하기 — 24시간 내내 뉴스 피드 보는 건 정보가 아니라 불안. 하루 20~30분 정해진 시간에만.
  2. SNS 알림 끄기 — 알림은 외부가 내 주의를 설정하는 장치. 내가 보고 싶을 때 들어가는 구조로.
  3. 긴 글 읽기 복원 — 30분 집중해서 책·에세이 읽는 연습. 짧은 글만 소비하면 사고가 짧아진다.

"이 정보가 10년 뒤에도 유효할까"

하라리가 자기 제자들에게 권한다는 질문 하나.

"지금 내가 흡수하는 이 정보는 10년 뒤에도 의미가 있을까?"

대부분 "아니오"다. 그 "아니오"에 들어가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 남은 시간을 10년 뒤에도 남을 무엇에 쓸 수 있다. 그 '무엇'이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가족, 누군가에겐 책, 누군가에겐 자기 몸. 그걸 찾아 가는 것이 21세기의 지혜라고 하라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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